“구타이 예술은 가능성을 추구하면서 생겨난 결과물이다. …우리의 정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구현하는 것이 우리의 욕망이다. 또한 모든 표현을 통해 신선한 감각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에 제약이 없기를 바란다."
구타이 아트 매니페스토
배경
구타이 미술 협회는 일본 최초의 급진적인 전후 예술 단체이다. 1954년 추상성을 넘어 순수한 창의성의 가능성을 열정적으로 추구한다는 목표로 설립된 이들은 구타이 예술이 물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예술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과 물질 사이의 섬세한 상호작용을 이야기 한다고 강조했다. “구타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정신이 자유롭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다”는 의미였다. “영혼”은 각각의 개인에게 고유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추상적인 실체이기도 했다. 구타이는 지로 요시하라가 이끄는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에 의해 형성되었고, 이 카리스마적인 리더 아래 젊은 예술가들은 전통 예술 작품의 한계에 도전했다.
발전
구타이의 축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으로 구타이의 많은 초기 작품들은 퍼포먼스와 대형설치작품 그리고 해프닝에 집중이 더 많이 되었다. 종이 찢기 (무라카미 사부로), 발로 페인트 칠하기 (시라가 카즈오), 페인트 병 던지기 (시마모토 쇼조), 전구로 만든 드레스 입기 (다나카 아츠코) 등은 전후 사회의 자유를 반영하는 예술 운동인 ‘구타이’를 특징으로 하고, 이는 전시의 전체주의와 상반된다. 1960년대 초부터 구타이의 초점은 구타이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루치오 폰타나, 주세페 카포그로시와 샘 프랜시스 등 저명한 서양 예술가들도 위한 전시 공간인 구타이 피나코테카의 개관과 동시에 점점 더 입체적인 작품들로 옮겨갔다. 구타이 2세인, 나사카 유코, 마에카와 쓰요시, 마쓰타니 다케사다 등은 색다른소재와 도구를 활용해 대표작을 만들어 구타이 피나코테카에서 열린 전시회에 적극 참여하였다.
구타이 후
구타이 그룹은 2013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획기적인 전시 이후 더 많은 대중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구겐하임전 후 여러 중요한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가 있었는데, 그 중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도쿄 1955-1970: 새로운 아방가르드’ 와 LAMOCA에서 있던 ‘그림파괴: 공허함을 그리다 1949-1962’ 등이 있다. 미술 시장은 이러한 전후 예술 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소더비 홍콩에서 2015년 3월 ‘아시아 아방가르드: 구타이와 그 유산,’ 그리고 2015년 10월 ‘풀 서클 - 요시하라 지로 컬렉션’을 전시한 바 있다. 구타이 리더인 요시하라 지로는 멤버들에게 과거에 존재했던 그 어떤 것 과도 다른 예술을 창조할 것을 가차없이 요구했다. 또한 그는 기존 예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도록 하기 위해 작가들에게 공원, 무대 또는 하늘에서 그들의 작업을 보여주는 전시를 기획하였다. 이 그룹은 해외에서 큰 호평을 받았으며 “구타이”라는 이름은 50년대 후반부터 서양 미술계에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1972년 그룹이 해체된 후에도 대담하게 지도자를 따랐던 구타이 예술가들과 함께 바로 그 정신은 아직 살아있다.
GUTAI ARTIST
일본 전후 아방가르드 그룹인 Gutai 미술 협회의 창립자이자 멘토인 Jiro Yoshihara는 물질성 자체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방식으로 혁신적인 예술의 길을 추구하였다. Gutai의 슬로건은 “아무도 모방하지 마라” 이다. 1960년에 Yoshihara는 여백의 캔버스에 나열되어 있는 강한 원형이 그려져 있는 작품 몇점을 출시하였고 작가는 이러한 모티브을 그만의 정교한 방법으로 만들며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Yoshihara의 원형의 창조성에 철학적인 의미는 없다. 그저 간편함으로 선택 된 모양이다. Yoshihara는 모든 고정관념에서 예술을 해방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Gutai그룹 맴버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유지해 왔다.
일본 액션 페인팅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Kazuo Shiraga는 국제적으로도 Gutai의 저명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Shiraga는 밧줄에 매달린 채 발로 그림을 그리며 몸짓으로 작업을 하였는데 그의 몸짓의 흔적은 표면에 역동적으로 두껍게 쌓인 물감의 흔적을 남겼다. 1955년 Gutai에 참여하기 전에 작가는 Atsuko Tanaka, Akira Kanayama 와 Saburo Murakami가 멤버였던 “Zero Society”에 활동적인 구성원였다. 프랑스 미술 비평가이자 앵포르멜 선언문의 창시자 Michel Tapié 는 그의 매혹적인 재능을 극찬했다. 결국 Shiraga는 불교 신자가 되어 Hieizan Mountain의 Enryakuji-Temple에 들어가게 되고, 불교 이름 Sodo Shiraga로 작가 활동을 이어 갔다. 1993년 작가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으며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전 세계 미술 소장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SHOZO SHIMAMOTO는 일본의 GUTAI 미술 협회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무엇보다 퍼포먼스 주도의 큰 스케일과 역동성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SHIMAMOTO의 '대포 그림'과 '병 던지기 수법'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전자는 자체 제작한 포관을 이용해 컬러볼을 쏘고 후자는 병에 물감을 채워 캔버스에 던진다. SHIMAMOTO의 예술적 본질은 "행동의 흔적" 그 자체이며, GUTAI 정신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일본 현대 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촉진시킨 SHIMAMOTO는 선구자의 끝없는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Sadamasa Motonaga는 구타이 미술 협회를 대표하는 1세대 멤버이다. 작가는 말년에 동화책 작가로 활동했으며 그의 특유의 유머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다. Motonaga는 1955년부터 1971년까지 구타이 그룹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물감으로 채운 비닐 봉지를 걸어 작업한 “Water Sculpture”, 일본화의 전통 적하법인 “Tarashikomi” 를 자신만의 화풍으로 응용, 에어브러시를 이용하여 아크릴 페인트를 뿌리는 등 자신만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잇달아 전개한 바 있다. Motonaga는 뉴욕의 Martha Jackson Gallery와 이탈리아 토리노의 International Center of Aesthetic Research와의 계약으로 인해 초기부터 해외 경험을 쌓게 되고 베니스 비엔날레,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토리노 프레미오 리소네 국제전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Tanaka는 1955년부터 구타이 미술 협회에 가입했으며, 1956년 Gutai Art on the Stage 에서 여러개의 전구를 묶은 "전기 드레스"를 입은 퍼포먼스로 그녀는 주목을 받게 된다. 전기 시스템 장치가 제작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며, 전기 배선의 데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원이나 곡선이 복잡하게 뒤섞인 평면 작품을 볼 수 있다. 합성수지 에나멜을 사용해 광택이 있는 재료와 선명한 색상으로, 그녀의 작품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한다. Tanaka는 Kazuo Shiraga, Sadamasa Motonaga와 같이 구타이 초기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여겨지며, Tanaka의 작품은 미국과 유럽의 많은 곳에 전시되어 있다.
Uemae는 최근 몇 년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GUTAI와 그 시대의 가장 오래된 증인 중 한 명이다. Uemae의 매력은 정교한 마티에르와 내성적인 에너지를 축적하는 데 있다. 크레인 기사, 교토의 전통 염색 공장의 견습생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 한 Uemae는 먼저 중국의 南畵 (남화,중국화의 2대 유파의 하나 ((수묵화(水墨畫)) 를 독학한 후 유화로 전향했다. 1953년 Uemae는 Yoshihara를 만났고, 그 이후로 구타이가 해체될 때까지 모든 전시회에 참여하게 된다. 페인트 나이프 혹은 섬세한 바느질로 무늬를 쌓아 올린 2차원 작품부터, 나무나 톱밥으로 만든 조각 작품까지 그의 광범위한 창작은 청소년기의 폭넓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Shuji Mukai는 제8회 Gutai전시에 처음 참여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고 그 후 협회가 해체될 때까지 모든 Gutai전시에 참가하였다. 그의 작품은 캔버스와 공간, 때로는 작가 자신의 몸을 가득 채운 다양한 형태의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다. Mukai는 초반부터 자신만의 작품 스타일을 확립하며 그의 정교한 설치작품은 제10회 Gutai전(1961), Gutai Pinacotheca 개인전(1962), 재즈 카페“Check”(1966) 등에서 이미 눈에 띄었다. 1969년 작가는 모든 작품을 불태우는 대규모 퍼포먼스를 실행한다. 이렇 듯 Mukai는 항상 시대를 앞서갔다. Guggenheim Museum의 회고전 “Gutai: Splendid Playground”(2013)와 베니스 비엔날레 확장전, Palazzo Fortuny의 Proportio(2015)는 아직까지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다. 2017년 Mukai는 뉴욕 소호의 루이비통 부티크 리뉴얼(건축가 피터 마리노 기획)에 설치 작업을 기고하며 다방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Maekawa는 삼베를 그의 생애에 걸쳐 주요 창작 재료로 사용해 왔으며, 삼베는 그를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Maekawa가 등장하기 전에 미술사에서 Joan Miró와 Alberto Burri와 같이 삼베를 사용하는 예술가가 몇 명 있었지만, Maekawa는 일생을 삼베의 물질성에 대해 연구한 최초의 인물이다. 또한 캔버스에 삼베를 입체적으로 붙이거나 꿰매는 것뿐만 아니라 반드시 유채로 채색을 하는 것이 마에카와의 특징이며, 3차원을 지향하면서도 회화라는 2차원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작가의 고집이 느껴진다. Maekawa는 Shuji Mukai 와 Takesada Matsutani를 포함해 구타의 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Gutai가 해체된 이후에도 해외에서 많은 전시를 통해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1937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한 Takesada Matsutani는 1960년도에 Jiro Yoshihara 아래에서 공부했으며 제9회 Gutai 전시에 참여하였다. 1962년부터 비닐접착제를 사용하여 부조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여 Gutai 미술협회 회원으로 초청한 Yoshihara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1967년에 S.W. Hayter의 판화스튜디오에 합류하고 세계적인 판화 전시에서 여러 상을 수상한 그는 1980년대부터 연필과 비닐접착제로 작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2019년 6월 파리의 Centre Georges Pompidou에서 개인 전을 갖았고 세계 유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Yasuo Sumi는 GUTAI 미술 협회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Shozo Shimamoto와 함께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동료였던 Shozo Shimamoto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학 교사였던 Sumi는 우연히 물감이 칠해진 주판이 그리는 아름다운 궤적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부터 주판은 진동기나 전통 우산을 포함한 Sumi의 대표적인 기법이 되었고, Sumi는 1955년 GUTAI에 합류하여 해체될 때까지 계속해서 GUTAI전시에 참여했다. 그의 세 가지 원칙인 "절망, 진지함의 부재, 무책임"을 반영한 즉흥적인 다양한 창작물들은 GUTAI의 리더인 Jiro Yoshihara에 의해 극찬 받았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수많은 전시를 열었던 Sumi는 특히 이탈리아에서 인지도가 높다.
1962년 일본 이과전과 아시야시전에서 연속 입상하면서 Nasaka는 Gutai 미술 협회장인 Yoshihara의 눈에 띄게 되며 1963년 협회에 조인하였다. 선박용 계량기를 생산하는 가족 사업으로 인해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원의 형태에 익숙하였으며 원은 평생 그녀의 창작 모티브가 된다. 구타이 피나코테카(Gutai Pinacoteca)에서의 첫 개인전 (1964)은 수많은 원형으로 공간을 채운 전시로 주목을 끌었고 Robert Rauschenberg, John Cage, Merce Cunningham과 같은 국제적 저명한 작가들이 관람한 바 있다. 일정 기간동안 활동을 중단한 후 다시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복귀 후에도 계속해서 원과 큰 조각 시리즈를 선보였다. Nasaka의 작품은 그녀의 무한한 원처럼 끝없이 관람객들을 매료시고 작가의 인기는 유럽에서도 커지고 있다.
Aine Kinashi는 음악가를 뜻하며 오사카 음악 학교 (현 오사카 음악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회화 작업을 시작하였다. 1950년대에 전위예술 그룹 “Delta”와 “Tempo”를 Masaya Sakamoto와 결성하고 Gutai미술협회에 가입한 1965년에는 그의 이름은 간사이 미술계에서 이미 널리 인지되어 있었다. 앵포르멜의 흐름인 역동적인 색체가 주류였던 시기에 Kinashi의 시원한 푸른 스타일은 눈길을 끌었다. 유화에 금색과 은색 가루를 섞은 독특한 마티에르에는 고요함 속에서 리듬을 느끼게 하며 Kinashi의 근원이 되는 음악적 요소를 일깨워 준다. 아이들을 위한 음악 교육에 전념하기 위해 일정 기간을 둔 후 1977년 다시 미술 창작으로 복귀한 작가는 많은 대형 작품을 남겼다.
1942년 Kazuo Shiraga와 동기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현 교토시립예술대학)에 입학 후, 1950년 간사이 종합미술전에서 일본화로 입선을 이루고, 1960년대에는 서양화로 전향한다. 1965년에 제15회 GUTAI 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하고, 이후 구타이 미술 협회 회원이 된다. 그는 GUTAI 가입 당시 앵포르멜의 영향이 짙은 회화 작품을 발표하지만, 점차 키네틱 아트를 시작으로 새로운 기술력을 이용한 Ligt art 작품의 변화로 후기 GUTAI 화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가 된다.
2013년 GUTAI-The Plendid Playground 전(NY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전시장 전체를 가로지르는 알루미늄 파이프를 연결한 과거의 입체 작품을 재현했다. 그러나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색채의 부드러운 융화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GUTAI 초기 회화 작품이 특히 인기가 많다.
"1925년 효고현 아야시에서 출생한 Tsuruko Yamazaki는 1946년 오바야시 세이신 여자학교 재학중 Jiro Yoshihara를 만나게 된다. 1948년 제1회 아시야시 미술 전람회에 참가하는 작가는 Gutai 미술협회 설립시부터 1972년 해산시까지 재적한 몇 안되는 멤버 중 한명이다. 구타이 해산 후에는 Masunobu Yoshimura(네오다다의 창시자)의 추천으로 1975년에 “Artist Union”에 참가한다. 작가는 극채색의 스타리프 회화나 페인트된 주석 캔의 입체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1956년 야외 Gutai 미술전에서는 진홍의 모기장 모양의 입체작품 “Aka”를 전시하였고 이 작품은 현재까지 작가의 대표작으로 여겨진다. 1980년대 이후에는 프리렌서로 활동하였고 일본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벨기에와 스페인에서 전시를 한 바 있다. 작가는 2019년 6월 세상을 떠난다.
Matsuda는 1967년 Gutai 미술 협회에 가입하여 회원 내 최연소이자 2세대 Gutai의 주요 멤버 중 한 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인으로서는 몇 안 되는 키네틱 아티스트이자, 모노톤을 중심으로 한 심플한 색감과 형상은 지적이면서도 신비로운 평화와 우아함을 구현한다. 모터 등의 장치가 만들어내는 기계적인 소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율동감을 느끼게 하고, 1960~70년대 당시에는 다가올 테크놀로지 시대를 마치 예언하고 있는 것 같았다. 1984년, Matsuda는 사립 미술 학교인 Bunsei Dojo Gallery Do를 난바(오사카)에 열었고, 다양한 교육 활동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